"아메리카" 의 유례

2012.08.26 06:01

전통 조회 수:4422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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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 베스푸치>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아마도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1512)일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초강대국인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인 베스푸치는 1492년에 메디치가의 사업을 관리하다가 독립하여 선박용품상을 차렸다. 

그는 이때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이루어진 항해에 대해 직접 보고 듣게 되면서 탐험 항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연안에 도착한 뒤 자신이 인도에 도착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문명 세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자 야심적인 항해가들이 각국의 왕실과 계약을 맺고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

베스푸치는 1499년 오예다와 코사가 이끄는 탐사대의 일원으로 항해에 참가하였다. 피렌체의 명문가의 아들로서 사업가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베스푸치가 탐사 항해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카티가라(Catigara)라고 말한 곳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카티가라를 인도의 최남단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곳을 발견하면 이곳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499년 5월 카디스 항을 출항한 탐험대는 카나리아 제도에 잠시 기항한 뒤 대서양을 가로질러 기아나 부근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오예다가 이끄는 탐사대는 북쪽으로 항해하였고, 베스푸치가 속한 탐험대는 오늘날 브라질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였다.

베스푸치는 브라질 북부 해안을 세인트 암브로스, 아마존 강을 ‘리오 데 포코 세초’(Rio de Foco Cecho, 숨겨진 불의 강)라고 명명하면서 계속 남하하였으나, 카티가라라고 생각할만한 대륙의 남단이 발견되지 않았다. 

베스푸치는 오늘날 아카라우 부근에서 회항하여 남미대륙을 북상하던 도중 베네수엘라 인근의 보네르 섬에 브라질우드가 많이 식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섬을 ‘브라질우드 섬’이라고 명명하였다.

아루바 섬에서는 집들이 물위에 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베니스를 연상하여 ‘작은 베니스’라는 뜻으로 ‘베네수엘라’라고 명명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모두 베스푸치가 명명한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베스푸치는 1450년 6월 중순 카디스로 귀항하였다. 그는 후견인인 로렌초 메디치에게 쓴 편지에 “해안을 따라 400 리이그를 항해한 결과 이곳이 대륙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라고 적었다.  

베스푸치의 생애나 탐험에 대해서는 콜럼버스나 마젤란에 비해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항해가로서의 업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랠프 에머슨은 “세빌랴의 피클장사로 수부장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던 베스푸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밀어내고 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고 혹평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시아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대륙임을 알고 있었고,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브라질 해안에 상륙하였으며, 적도 해류의 존재를 인식한 최초의 항해가였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 서반구에서 적도 이남을 항해한 최초의 항해가이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발트제뮬러(1470-1518)가 『世界誌序說』에서 “새로 발견된 대륙을 발견자인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고의 땅’, 즉 아메리게 또는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데 대해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정당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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