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상당한 인식 차이와 불통이 존재하고 있다. 불통이라 함은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뜻만이 아니다. 양국 관계에선 한쪽이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쪽이 음색이나 음조의 높이를 서로 맞추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한·일 관계는 마치 부서진 악기처럼 이런 튜닝 작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대중 강연을 했다. 그때 나온 질문의 하나가 아베 정권이 서울과의 불안정한 관계를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는가였다. 그는 자신이 한·일 관계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는 1957년에서 60년까지 일본 총리를 지낸 자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어떻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좋은 친구로 지냈는지를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불통의 좋은 사례다. 내가 믿기로 아베는 서울과 도쿄의 관계 강화를 원한다. 이러한 언급은 아베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해 거의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백한 이유 때문에 이런 발언은 한국에선 잘 먹히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한국에서 이미 복잡한 한·일 관계를 더욱 복잡한 국내 정치문제로 만들 뿐이다. 

조금 자질구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슷한 사례를 서울에서 겪었다. 최근 서울에서 한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함께 참석한 미국인·일본인 동료와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독도를 실시간 영상으로 보여주는 평판 텔레비전이 그 앞에 설치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인들은 눈앞에 나타난 민족주의의 현장을 보고 웃음을 지었으나 일본인들은 조용히 그 곁을 지나갔다. 나중에 진행된 콘퍼런스에선 한·일 관계를 다루기 위해 마련된 행사가 개막한 바로 그날에 이 같은 화면이 나온 것이 또 다른 불통의 사례가 아닌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는 ‘냉전’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제3국이 서울과 도쿄의 관계 개선을 역설할 때 두 나라는 공감과 이해 대신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다. 요즘도 이런 독선주의 때문에 두 나라가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예를 들면 아베는 취임 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고, 독도 문제를 국제중재재판소에 들고 가지 않았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최초로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 등 양국 사이의 마찰을 막기 위해 조용히 노력해 왔다. 이 때문에 도쿄에서는 이제 공은 서울로 넘어갔으며 한국은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서울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다며 실망하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과거에 일본의 이런 행동을 신뢰했다가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등이 이어지면서 정치적으로 난처했던 일을 떠올린다.

특히 서울은 만일 아베가 올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한·일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아베 정권의 참의원 선거 승리는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비롯한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일본 총리에 대해 어떠한 믿음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한·일 냉전의 기운은 독도와 종군위안부 같은 특정 이슈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관계에서 두 나라의 상대적인 위상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요즘 자국이 글로벌 세력으로서는 물론 중요한 지역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일본이 체면을 깎는 성명을 발표하면 이를 참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아베가 선언했다시피 ‘다시 돌아온’ 일본은 몇 년에 걸친 정치적인 표류와 재난 복구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다독거리는 대신 자국의 경제회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한다. 

최근의 한·일 냉전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첫째,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일본과 한국에 진짜 안보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여름의 참의원 선거 전까지는 양국 협력이 불가능하거나 협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북한의 다음 도발은 그 이전에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울과 도쿄 간에는 안보와 정보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 

둘째, 현재 양국의 지정학적인 상황은 부정적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것과도 같다. 새 정부는 항상 이전 정부와 차별화한 정책을 펴려고 하게 마련이다. 박근혜와 아베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계속 강화하려고 할 뿐 아니라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와의 관계도 실용적으로 관리·개선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의 위험은 내 동료인 마이클 그린이 앞서 제기했듯이, 이러한 역학이 서울-도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을 비판하는 대신 일본과 거리를 둠으로써 중국과 친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도쿄도 마찬가지로 서울을 무시함으로써 중국과의 실용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다. 이런 양국 입장의 아이러니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보다 강화시킬 경우 더욱 나은 위치에서 중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입안자라면 이러한 역학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