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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랑 미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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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추모사업에 나선 사람들”” – 주간조선 인터뷰 기사

 

 

“너무 늦은 일…백만명 회원 모아 추모동산 만들 것”

“육영수추모상건립위” 창립한 이경재 위원장

 

지난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고 육영수 여사의 추모상 건립위원회 창립식이 열렸다. 이날 육영수 여사의 탄생 90주년을 기리는 추모 음악회도 열렸다. ‘날 잊지 말아요’ ‘그대 있음에’ ‘목련화’ 등이 연주됐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육 여사를 위해 지은 추모시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이 낭송됐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잊어 버리려고,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 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 버리려고,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박정희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중)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운명했다. 당시 문세광은 조총련계 재일동포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했지만 총알이 빗나가 연단 옆에 앉아 있던 육 여사가 맞고 말았다.
   
   육 여사는 청와대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야당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대 이상 다수는 육 여사를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상냥하고 따뜻한 ‘어머니상’ 또는 ‘아내상’으로 기억한다.
   
   현직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 공식행사장에서 테러리스트의 총탄에 비명에 간 예는 20세기 역사에서 찾기 힘들다. 육 여사는 정부의 공식행사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기 때문에 ‘순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육영수 여사 서거 40년이 넘도록 정식 추모상은 아직 없다.
   
   전남 소록도에 있는 추모비 정도가 전부다. 육 여사가 소록도에 생전 두 번 방문했던 것을 고마워한 한센병 환자들이 자발적 모금을 통해 세운 추모비다. 그의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이후 그를 기릴수 있는 곳은 충북 옥천의 생가나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정도다. 아직 우리 국민 중에는 TV로 접한 육 여사의 충격적인 서거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군사 정부 시절 각진 군인들 사이에서 육 여사의 온화한 미소는 한층 부각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왜 육영수 여사를 기리는 추모상은 아직 없을까.
   
   지난 12월 21일 육영수 여사의 추모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경재 위원장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육영수 여사는 영원한 백목련으로 기억되는 분”이라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있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육 여사를 두고 비유한 ‘백목련’으로 말문을 열었다.
   
   “건립위가 창립되기 전인 지난 8월부터 각 계층의 인사들과 만나 육영수 여사의 추모상 건립을 하겠다고 하자 다들 ‘왜 이제서야’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동안 유신체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일부 국민들의 정서가 박정희 일가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나도 그간 기사와 책을 통해 유신체제에 대해 ‘헌정을 무너뜨린 행위’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하지만 육 여사는 정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99를 잘하고 1을 못한 사람한테 1만 지적하며 물고 늘어진다면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있었는데 외모와 달리 손이 보들보들하더군요. 그래서 의외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나름 언론에 자유를 주었어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소위 ‘깔 건 깔 수 있게’ 내버려 뒀단 말이죠.”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 여사 추모상 건립 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과 직접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 대통령이란 자리가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겠죠. 하지만 육 여사 피격사건은 어머니를 잃은 한 인간에겐 가슴의 응어리로 남을 일입니다.”
   
   

http://weekly.chosun.com/up_fd/wc_News/2388/limg_org/2388_32_01.jpg

▲ 1965년 설을 맞아 대구시 고아원과 신생원을 방문한 육영수 여사. photo 뉴시스


유신체제 비판했던 기자, 백목련 동산 만든다
   
   그는 19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20년 이상 야당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당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4년 ‘신동아’ 기자로 복직했고, 1987년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1991년에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변인과 공보수석, 공보처 차관을 맡기도 했다. 그는 유신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군부의 언론통제가 풀린 후 복직한 신동아에서 그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1986년에는 연재기사를 엮어 ‘유신쿠테타’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하지만 책은 몇 권 팔리기도 전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를 지난 11월 기업인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육영수영부인추모상건립위원회’가 적힌 명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 위원장에게 이런 이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추측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현역에서 한 발 물러난 사람이라 마음 편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맡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육영수영부인추모상건립위원회는 현재 발기인 500명, 후원회원 2000명을 모집했다.
   
   건립위의 순수한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발기인 중 정치인은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기업 후원은 일절 받지 않고 개인의 후원금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소액다수’ ‘백만명의 후원인’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후원인들의 작은 손길을 모아 육 여사를 상징하는 ‘백목련 동산’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 위원장은 “애초에는 동상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육 여사의 따뜻한 성품과 그를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전시될 수 있게 ‘백목련 동산’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선 장충동 국립극장에 동산을 설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으로도 큰 존재였지만 한국사에서 여인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JP도 회고록에서 ‘육 여사가 일찍 서거하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말년도 더 부드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육 여사의 이해심 많고 화합하는 따뜻한 품성은 지금 시점에서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http://weekly.chosun.com/images/endmark.gif   
   그는 19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20년 이상 야당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당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4년 ‘신동아’ 기자로 복직했고, 1987년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1991년에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변인과 공보수석, 공보처 차관을 맡기도 했다. 그는 유신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군부의 언론통제가 풀린 후 복직한 신동아에서 그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1986년에는 연재기사를 엮어 ‘유신쿠테타’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하지만 책은 몇 권 팔리기도 전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를 지난 11월 기업인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육영수영부인추모상건립위원회’가 적힌 명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 위원장에게 이런 이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추측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현역에서 한 발 물러난 사람이라 마음 편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맡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육영수영부인추모상건립위원회는 현재 발기인 500명, 후원회원 2000명을 모집했다.
   
   건립위의 순수한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발기인 중 정치인은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기업 후원은 일절 받지 않고 개인의 후원금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소액다수’ ‘백만명의 후원인’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후원인들의 작은 손길을 모아 육 여사를 상징하는 ‘백목련 동산’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 위원장은 “애초에는 동상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육 여사의 따뜻한 성품과 그를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전시될 수 있게 ‘백목련 동산’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선 장충동 국립극장에 동산을 설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으로도 큰 존재였지만 한국사에서 여인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JP도 회고록에서 ‘육 여사가 일찍 서거하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의 말년도 더 부드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육 여사의 이해심 많고 화합하는 따뜻한 품성은 지금 시점에서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http://weekly.chosun.com/images/endmark.gif

 

이경재 위원장 사진.jpg

이경재 위원장( 7선 국회의원, 전 방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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