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아야 할 박근혜

2012.08.11 03:50

관리자 조회 수:2680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다시 보아야 할 사람...박근혜.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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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공화국을 창설하였다.
6.25 전쟁이후 피폐한 경제환경을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았던 정치권에 대해
물갈이라는 절대절명의 목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하면서
독재정치라는 역기능이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 경제 회생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던
순기능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에 이어진 군사 정치는
박정희 대통령에서 기반을 잡았던
국력 증진과 경제회생의 과정을 제대로 
이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까지
20여년 동안 잠재해 왔던 민주화 운동이
그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김영삼 대통령의 
탄생이라 하겠다.
 
3당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문민정치의 기틀을 잡았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김영삼 대통령의 등장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인기를 받으면서
출범하였고 그 지지율은 80%대까지 이어졌다.
얼마 지나서 자식의 부정과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IMF 사태를 맞게 되었지만 취임초에
국민들이 기대했던 문민정부의 역할은 당시 군부의
사조직화를 제거하는 등 어느 정도의 역할을 보였다.







 
김대중이라는 인간은 거론을 할 필요도 없고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대통령의 재목이라고 여겨질 수 없었던 인물이
시류를 타고 당선된 것은 뉴스의 특종 감이었다.
아날로그 방식의 선거운동에서 탈피하여 인터넷에 근거한
디지털 문명을 철저히 이용했고 온, 오프에서 선거운동을
조화롭게 펼쳐서 이룩한 쾌거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능력보다는 이미지와 바람을 동원하여
포장을 잘하였던 대통령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 재임기간 5년 내내 국민에게
걱정만 안겨 주는 언행을 일삼았고
조기 레임덕에 휘말리면서 유사이래 처음으로
탄핵안까지 국회에서 결의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반성을 하고
작심을 하여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포장만 요란하였지 내용물이 과연 충실한가 하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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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들어서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세월을 이겨내고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선거기간 내내 이명박과 박근혜 두사람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70%대를 넘나 들었다.
이후 당내 후보 경선에서 석패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이명박 후보에게 대부분 이전되면서 이명박 후보는 무난히
큰 표차이로 그리고 높은 지지율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 저하는
박근혜 전 대표에 의해서 그나마

유지한다고 해야 옳은 분석이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지지율을 따로 실시할 경우

아마 40% 대 20%대로 나올 것이다.
나머지 40%대의 지지율은 무관심 층이나
일부의 경우 야당으로 할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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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초부터 현재까지 국민에게 보였던
국정 수행의 능력은 실망 그 자체이다.
광우병 소동에서 촛불집회로 혼란을 겪은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없는 실용정치에 다시 한번 좌절을 느꼈다.
그리고 호국, 안보 차원에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처리하는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의 눈초리는 차갑고 불안하기만 하다.
자연히 국민적 지지율은 하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박근혜 대표가 침묵을 지키는 것도

이명박 대통령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한 마디 하는 것도
큰 의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켜 주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가 국가를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 라고
떠드는 정치인이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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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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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국의 마거릿 대처를 자처한다.
사실상 지난 대선 출정식이었던 연설 때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탈출구를 ‘철의 여인’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지도력,
즉 대처리즘에서 찾아왔다.

박 전 대표는 “대처가 영국병을 치유했다면,

나는 한국병을 고치겠다”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강인한 이미지를 선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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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딸 = 박 전 대표는
1952년 2월
군인인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
2녀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이 되던 1961년
당시 소장이던 부친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2년 후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18년의 청와대 생활 동안

박 전 대표는
부친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지도자의 모습을 몸에 익히게 된다.

74년 어머니를 잃고 22살에 퍼스트 레이디가 된 뒤
아버지의 서거까지 5년 동안 국정 경험과 함께
국제적인 외교 감각을 터득했다.
이때부터 그의 가슴에는 조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들이
깊이 각인됐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훗날 이때의 경험이

커다란 자산이 됐다고 술회한다.
79년 미국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전공인 전자공학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뜻밖에 퍼스트 레이디를 맡게 됐을 때 전자공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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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당시 꼼꼼히 기록하고 챙기는 습관이

유별났다고 한다.
‘추위가 빨리 온다’, ‘눈이 많이 온다’는

기상예보만 나오면
박 전 대표는 직접 청와대 담당자들을 불러
“전국을 빠짐없이 챙겨 피해가 없도록 준비하라”며
수첩에 그들의 보고를 메모하곤 했다고 한다.
‘수첩공주’로 불리게 된 시발이다.

79년 아버지마저 여의면서 박 전 대표는 삶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는다.
아버지의 서거를 맞은 박 전 대표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전하는 청와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건넨
그의 첫 마디는 “지금 전방의 상태는 괜찮습니까”

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안보가 DNA처럼 피 속에 박혀 나온

조건 반사적 이야기”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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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간 인고의 세월 = 세상 인심이 그렇듯
권력을 좇아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은 아버지의

서거 이후 철저하게 박 전 대표를 외면했고,

심지어 배반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 기약없는 은둔생활에 들어간 끝에
세상에 복귀하기까지 18년이나 걸렸다.

이 기간 동안 절망적인 상실감과 권력의 쓰라림은
오히려 박 전 대표를 ‘공주’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탈바꿈시켰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인고의 세월이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올 수 있는 놀라운 정신력과 근성의

원천이 된 셈이다.

이 시기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과

영남대학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선친의

역사적 정당성을
외롭게 주장하는 한편 역사와 철학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면서
정신적 지평을 넓히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97년 11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대선 유세 지원활동을 벌이면서 사실상 정치

활동에 입문했고, 98년 4월 치러진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부터

공식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97년 ‘IMF’ 외환위기로 위기에 빠진 국가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정계 입문의 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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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박근혜 = 박 전 대표는
2000년에 당 총재 경선에 출마,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2등을 차지하며 부총재로 당선됐다.
2001년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하면서

당 개혁안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하는 강단을 보였다.

이 기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남북철도 연결, 금강산댐 공동 안정성 조사,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협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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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총재가 개혁안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2002년 후반 한나라당에 재입당한 박 전 대표는
불법 대선자금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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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천막당사’ 시절 그는 2004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박풍’을 일으켜 121석의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면서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한 ‘잔다르크’로 불린다.
‘위기에 강한 여자 박근혜’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했으며 아버지의 ‘후광정치’를 벗어나

대선후보로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2년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5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거뒀고, 그의 재임 기간

여당 대표는 8명이 바뀌었다.


박 전 대표가 처음 대표로 취임할 당시 7%에 머물던

당 지지율이 그의 퇴임 시에는 50%에 육박하게 되었다.

당시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비주류 수장격인

홍준표 의원을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해 당 개혁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5·31 지방선거 지원 유세 당시

테러를 당해 입원해 있으면서도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선거 판도를 바꾸는 등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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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이 어울리는 ‘철의 여인’ = 박 전 대표는
전후세대 특히 신세대와 통하는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1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싸이월드’의

미니홈페이지 방문자가 600만명에 가깝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평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면서 이들과 더욱 친밀해지려는

노력을 하는 ‘인기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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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는 붉은 옷을 좋아한다.
정책토론회 등 중요한 행사 때마다 그는 붉은 재킷을

즐겨 입었다. 보통 피 또는 혁명을 뜻하는 붉은색은

진보성향의 후보가, 푸른색은 보수성향의 후보가

좋아한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경우는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가여워 보이던 영애(令愛)에서 강력한 여성 대선후보로

거듭난 그에게 붉은색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전투복' 이란 애칭으로 알려진 바지정장 차림 또한
정국의 고비 때마다 가진 중요한 기자회견이나 장외투쟁을

할 때, 민생현장을 방문할 때는 빼놓지 않았던

박 전 대표의 대표적인 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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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선하고 글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10년.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왜 박정희 전대통령과
박근혜를 생각하게 되는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다.
단지 작금의 정치권이 답답해 보여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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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기다려진다!

다시 한 번 '박근혜'를 복기해 본다.





(시상식장에서의 박근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4년 연속

'백봉 신사(紳士)상'을 수상했다.
'백봉 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박희태 국회의장)가
국회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국회의원의 신사적 태도와

의정활동 2개 분야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 최고점수를

받은 의원에게 주어진다.
박 전 대표는 151명의 응답자 가운데 67표를 얻어
2009년에 이어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수상 후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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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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