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관계
- 지역
아시아 > 중국
- 분야
외교
목차
1. 중국과 일본의 관계 추이
1) 1950년대~1970년대 중국과 일본의 관계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PRC)1)이 성립된 후 중국과 일본 양국간에는 상호 의구심과 불신이 충만한 적대관계가 지속되었으나, 양국간 비공식 교류는 꾸준히 전개되었다. 양국은 1952년 6월에는 중국·일본 민간무역협의에 서명하였고, 1955년 4월에는 중국·일본 민간어업협정에 서명하였다. 1960년대에는 중국에서 소련 전문가들이 갑작스럽게 철수함에 따라 중국으로서는 일본과의 보다 밀접한 경제·무역 관계를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양국간 민간 무역 양해각서가 1962년 11월에 체결되어 중국 내에 공장이 건설되고, 일본 내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는 등의 실질적인 협력관계가 증진되었다.
중국 문화혁명(文化革命) 시기를 맞이하여 양국간 교류는 감소하고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였다. 또한 미군의 일본 주둔으로 중국 내 반감이 강해졌으나 집권 자민당 내에는 대(對)중국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태동하였다. 이에 따라 1972년 9월에 국교정상화를 이루고, 1978년 8월에는 중국·일본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였다. 평화우호조약에서는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및 평화공존을 천명하고, 패권반대, 제3국 대항반대, 항구적 우호협력 증진의 내용을 담았다. 그 후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발전을 통해 자국의 국제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고, 대(對)중 경제진출 증대를 통한 국익 증진을 위해 중국과의 우호관계 유지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중국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여, 대(對)일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다.
2) 1980년대~1990년대 중국과 일본의 관계
1980년대 들어 양국관계는 급격한 진전을 이루었으나, 일본 지도층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가 숙청되고 이어서 1989년에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발하자 중국·일본 관계는 악화되었다. 톈안먼 사태 이후 일본의 대(對)중국 경제 제재로 양국은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90년 7월 일본이 대(對)중 차관을 재개하고, 1992년 10월에는 일본 천황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고위인사 교류를 통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1995년 일본은 달라이 라마(Dalai Lama)의 일본 방문을 허용하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인권위원회에서 ‘중국 인권결의안’과 관련하여 서방측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1995년 중국의 지하핵실험을 계기로 대(對)중국 무상원조를 동결하였다. 또한 1996년 4월 미·일 신(新)안보협력선언이 발표되고, 1996년 7월 센카쿠열도(尖閣列島)에서 영토 분규가 발생하고, 1996년 8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총리의 신사참배로 역사인식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따라 양국관계는 최악의 국면에 돌입하게 되었다.
1997년 ‘중국·일본 국교 정상화 25주년’을 맞아 양국 총리의 교환방문이 이루어지고, 1998년에는 ‘중국·일본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아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중국 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어서 1999년에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다소 소원하였던 양국관계를 개선하고 협력관계를 도모하게 되었다.
3) 2000년대 중국과 일본의 관계
2000년 10월에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고, 2001년 10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2002년 4월에는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일본을 방문하는 등 양국 지도자의 상호방문이 진행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관계발전을 위한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001년 8월, 2002년 4월, 2003년 1월, 2004년 1월, 2005년 10월 등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고, 2005년 4월 일본에서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검정이 발표되자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중국 내 각 도시에서 격렬한 반일시위가 발생하는 등 양국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 시절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악화된 중국·일본 양국 갈등관계가 이후 잇따른 정상 상호 방문으로 전면적인 개선 추세를 나타내었다. 즉 2006년 10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고, 2007년 4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2007년 12월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고, 2008년 5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특히 2006년 10월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양국간 ‘전략적 호혜관계’을 설정하고 ‘역사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2007년 4월 원자바오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양측은 쟁점 현안들을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호혜관계를 구축하였다.
아베 신조 총리 후임으로 대(對)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2007년 9월에 총리로 선출된 이후, 중국·일본 관계는 군사, 경제·통상, 문화 등 제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2007년 11월에 중국 해군 함정이 최초로 일본에 입항하였으며, 2007년 12월에는 제1차 중국·일본 고위급 경제대화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중국·일본 우호조약 체결 30주년을 기념하여 양국은 청소년 교류를 강화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였다. 한편 2006년 6월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동남아시아와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을 목표로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일본 언론은 후쿠다의 이러한 주장을 1970년대 말 부친인 후쿠다 다케오(福田 赳夫) 총리가 발표한 ‘후쿠다 독트린(doctrine)’(동남아시아 중시 정책)과 비교하여 ‘신(新)후쿠다 독트린’으로 이름 붙였다.
2007년 12월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중국 방문에 이어 2008년 5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일본 방문으로 양국 관계는 완전 복원되었다. 그리고 ‘전략적 호혜관계’를 추진하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발전 방향을 규정한 ‘정치문서’를 채택하였다. 2008년은 중국·일본 정상급 교류가 많았던 해였다. 먼저 후진타오 주석이 2차례 일본을 방문하였다. 한 번은 공식방일이었고, 또 한 번은 도야코(洞爺湖)에서 개최된 G8(Group of 8)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리고 후쿠다 총리가 베이징 올림픽(Olympic)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아소 다로(麻生太郎) 총리가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셈(ASEM)2)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였고, 원자바오 총리가 후쿠오카(福岡)에서 개최된 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였다. 한편 2008년 6월에는 양국간 최대 현안의 하나인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과 관련하여 원칙적인 합의를 성사시켰다.
2009년도에 들어서는 3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는데, 2년 만에 중국·일본 ‘안보대화’를 재개하는 등 양국간 ‘전략적 호혜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양국은 2009년 4월에 G20(Group of 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2009년 4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3 정상회의와 아소 다로 총리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총리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2009년 10월 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양국간 고위 인사 교류의 모멘텀(momentum)을 강화하였다. 2009년 1월 및 2009년 6월에는 중국·일본 전략대화(차관급)를 2회 개최하였고, 2009년 6월에는 경제고위급 대화(장관급)를 1회 개최하였다. 한편 2009년 6월, 제10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에서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중국의 군사부문 투명성 결여에 대한 일본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중국의 핵군축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2009년 9월 일본의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양국은 활발한 고위인사 교류를 통해 새로운 관계 진전을 모색하였다. 2009년 11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장 및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이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2009년 12월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2009년 12월에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은 중국·일본간 인력교류 프로그램인 ‘장성(長城) 계획’의 일환으로, 국회의원 143명 등 각계인사 643명을 인솔하여 2009년 12월에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회견하고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면담하였다.
4) 2010년대 중국과 일본의 관계
2010년 5월 30일 ~ 2010년 6월 2일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였다.
2010년 9월 7일 일본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과 선원을 구속한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등 대(對)일 여론이 악화됨에 따라 중국 정부가 강경대응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대(對)중 여론이 악화됨과 동시에 일본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일본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중국 측은 동중국해 자원개발 조약교섭을 연기하고, 정상회담 성과사업인 일본 청소년 1,000명의 상하이(上海) 엑스포(EXPO) 방문을 취소하였으며, 장관급 이상 교류를 중단하고, 항공편 증편과 관련한 접촉을 중단하는 등 대응조치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결국 희토류의 대(對)일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고, 군사시설 촬영을 이유로 일본 민간인 4명을 조사하는 등 강경조치를 실시하였다.
다만, 2011년 3월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자 중국 정부가 일본에 대해 3,000만 위안 상당의 인도주의 물자 지원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 일본정부가 수용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여 지원이 이뤄지는 등 중국·일본 양국간 관계개선 분위기가 모색되었다.
2011년 9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신임총리가 취임하면서 노다 총리의 2011년 연내 방중 문제가 중국·일본 양국간에 협의되었다. 그리고 2011년 10월 13일에 야마구치 쓰요시(山口壯) 외무성 부대신이 중국을 방문하고, 2011년 10월 14일에는 나카노 조(中野譲) 외무대신 정무관이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2011년 11월에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대신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양국 외교 당국간 고위급 교류가 이루어졌다. 2011년 12월에는 중국·일본 외교차관급 전략대화에 이어 2011년 12월 25일 ~ 2011년 12월 26일에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일본 양국관계를 강화하고 상호 신뢰회복 방안 등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양국간 해양문제 협의체를 설치하는 것에 공식 합의하였다.
2. 중국과 일본의 주요 현안
1)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중국과 일본은 댜오위다오(釣魚島)3)에 얽힌 영유권 분쟁을 진행 중에 있다. 일본은 1894년 일본인이 최초로 센카쿠 열도가 무인도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각의(閣議)에서 영토 편입을 결정한 이래 ‘계속적, 평화적, 실효적 점유’를 근거로 자국 영토라는 입장이다. 한편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1534년 최초 발견된 이후 자국 영토였으며,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평화조약에서 “타이완(臺灣) 및 부속 도서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 포기”라고 명기한 내용에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댜오위다오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은 1969년 국제연합극동경제위원회에서 ‘동중국해상 천연자원 매장량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본격화되었다. 1997년 중국·일본 어업협정 체결 때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문제는 보류되고 중간수역으로 설정하였다. 2004년 3월 중국인의 댜오위다오 상륙 시도, 중국 선박의 접안 시도, 중국 해양탐사선의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 침범 등으로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었다.
중국·일본 모두 댜오위다오 문제의 조기 해결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 중에 있다. 그러나 이 영유권 문제는 인근 수역 자원개발을 둘러싼 갈등 형태로 분출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2)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는 중국이 중국·일본 영유권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에서 2003년 7월 춘샤오(春曉) 가스전의 개발에 착수함에 따라 양국간 마찰이 표면화되었다. 춘샤오 가스전은 중국·일본간 동중국해 중간선으로부터 중국으로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중국해 대륙붕 경계원칙으로 일본은 중간선 원칙을 주장하고, 중국은 자연연장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2009년 10월 중국·일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천연가스 채굴 관련 협력을 통해 동중국해를 ‘우애(友愛)의 바다’로 만드는 것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공동개발 구역 설정 문제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문제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 양측 최고위급의 정치적 결단이 없는 한 해결이 어려울 전망이다.
3. 중국과 일본의 주요 정치문서
문서명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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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일본 공동성명: | ▸ 중국·일본간 비정상적 상태 종결 |
중국·일본 평화우호조약: | ▸ 주권존중, 평화공존 5원칙 하에서 평화우호관계 발전 |
중국·일본 공동선언: | ▸ 평화공존 5원칙, 국제연합 헌장이 국가관계 설정의 중요한 역할 수행 |
중국·일본 전략적 호혜관계의 전면적 실천을 위한 공동성명: | ▸ 중국·일본 전략적 호혜관계 설정 |
4. 중국과 일본의 주요 외교일지
중국과 일본의 주요 외교일지(1979년~2004년)
날짜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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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983년 | 일본 정부, 동 기간 3,309억 엔(15억 달러)의 1차 엔차관 제공 |
1981년 9월 | 자오쯔양(趙紫陽) 총리 일본 방문 |
1982년 9월 |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총리 중국 방문 |
1983년 11월 |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일본 방문 |
1984년 3월 |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중국 방문 |
1985년 7월 | 중국·일본 각료회의 개최 |
1985년 8월 15일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신사참배 계기 중국 내에서 반일(反日)시위 발생 |
1986년 11월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중국 방문 |
1989년 6월 | 톈안먼(天安門) 사태 관련 대(對)중국제재 일환으로 제3차 엔차관 교섭중단 |
1990년 4월 |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대(對)중 제3차 엔차관 재개 검토 언급 |
1990년 8월 |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前) 총리 중국 방문 |
1990년 10월 | 일본 정부, 1990회계년도분 1,022억 엔의 차관을 3회 분할 제공키로 결정 |
1990년 11월 | 일본 외무성, 대(對)중 엔차관(1990년도 1차분) 재개 발표 |
1990년 11월 | 우쉐첸(吳學謙) 부(副)총리,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 즉위식 참석차 일본 방문 |
1990년 12월 | 일본의 대(對)중 3차 엔차관 1990년도 2차분(426억 엔) 제공 각서 교환 |
1991년 3월 | 일본의 대(對)중 엔차관 1990년도 3차분(433억 엔) 제공 협정 조인 |
1991년 8월 | 가이후 도시키 총리 중국 방문 |
1992년 4월 | 장쩌민(江澤民) 총서기 일본 방문 |
1992년 10월 |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 중국 방문 |
1997년 9월 |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중국 방문 |
1997년 11월 | 리펑(李鵬) 총리 일본 방문 |
1998년 11월 | 중국·일본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 계기 장쩌민(江澤民) 주석 일본 방문 |
1999년 7월 |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중국 방문 |
2000년 7월 | 첸치천(錢其琛) 부총리 일본 방문(오부치 게이조 총리 조문 사절) |
2000년 9월 | 뉴질랜드 오클랜드(Auckland)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0년 10월 | 주룽지(朱鎔基) 총리 일본 방문 |
2001년 10월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중국 방문 |
2001년 10월 | 상하이(上海) APEC 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2년 4월 | 주룽지 총리, 보아오포럼(BFA, Boao Forum for Asia) 계기 중국·일본 총리회담 |
2002년 4월 | 리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일본 방문 |
2002년 9월 |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Asia-Europe Meeting) 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총리회담 |
2002년 9월 | 중국·일본 수교정상화 30주년 기념 축전 교환 |
2002년 10월 | 멕시코 로스카보스(Los Cabos) APEC 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3년 5월 |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건도 300주년 행사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4년 11월 | APEC 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4년 11월 |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3 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총리간 회담 |
중국과 일본의 주요 외교일지(2005년~2011년)
날짜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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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5년 5월 | 제1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중국 베이징(北京)] |
2005년 5월 | 우이(吳儀) 부총리 일본 방문 |
2005년 6월 | 제2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일본 도쿄(東京)] |
2005년 10월 | 제3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중국 베이징) |
2006년 2월 | 제4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일본 도쿄) |
2006년 5월 | 제5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중국 베이징, 구이저우(貴州)] |
2006년 9월 | 제6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일본 도쿄) |
2006년 10월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중국 방문 |
2006년 11월 | 베트남 하노이(Hanoi)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비공식 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7년 1월 | 필리핀 세부(Cebu)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3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7년 1월 | 제7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중국 베이징, 항저우(杭州)] |
2007년 4월 |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일본 방문 |
2007년 6월 | 독일 하일리겐담(Heiligendamm) G8(Group of 8) 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7년 9월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Sidney) APEC 비공식 정상회담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7년 9월 | 중국·일본 수교 정상화 35주년 기념 축전 교환 |
2007년 12월 | 제1차 중국·일본 경제고위급 대화(중국 베이징) |
2007년 12월 |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 중국 방문 |
2008년 2월 | 제8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중국 베이징) |
2008년 5월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일본 방문 |
2008년 5월 | 후쿠다 야스오 총리, 쓰촨성(四川省) ‘원촨(汶川) 대지진’에 관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및 원자바오 총리에 각각 위로 전보 발송 |
2008년 7월 |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G8 정상회담 계기 후진타오 국가주석 일본 방문 |
2008년 8월 | 후쿠다 야스오 총리, 베이징 올림픽(Olympic) 개막식 참석 계기 중국 방문 |
2008년 10월 |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Asia-Europe Meeting) 정상회의 참석 차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중국 방문 |
2008년 11월 | 페루 리마(Lima) APEC 비공식 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9년 1월 | 제9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일본 도쿄) |
2009년 4월 | 영국 런던(London) G20(Group of 20) 금융정상회담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09년 4월 | ASEAN+3 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총리간 회담 |
2009년 4월 | 아소 다로 총리 중국 방문, 중국·일본 총리회담 |
2009년 6월 | 제2차 중국·일본 경제고위급 대화(일본 도쿄) |
2009년 6월 | 제10차 중국·일본 전략대화(일본 도쿄) |
2009년 6월 | 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중국 베이징) |
2009년 12월 |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일본 방문 |
2010년 4월 | 미국 워싱턴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핵안보정상회의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10년 5월 30일 ~ | 원자바오 총리 일본 방문 |
2010년 10월 | 벨기에 브뤼셀(Brussels) ASEM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10년 10월 | 일본 도쿄 ASEAN+3 계기 중국·일본 전략대화 |
2011년 2월 | 제11차 중국·일본 전략대화(도쿄) |
2011년 11월 | 미국 호놀룰루(Honolulu) APEC 계기 중국·일본 정상회담 |
2011년 12월 |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중국 방문 |
각주
- 1) 중화인민공화국(PRC):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영어); 中華人民共和國(중국어)
- 2) 아셈(ASEM): Asia Europe Meeting; 아시아 유럽정상회의
- 3) 댜오위다오(釣魚島):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 출처
중국 개황, 2012.1.3,
외교 통상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