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책; 직역한 것이면 좋으나 노자의 도덕경은 직역으로 뜻이 안 통하는 곳이 대단히 많다. 그러므로 책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렵다.
  도덕경이 5000 자 밖에 되지 않으므로 전체 한문을 싣는다. 다만 내 실력으로 이해 가능한 부분만을 다른 책을 참고하여 우리말의 번역문을 실었다. 노자 사상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주(主) 목적이므로 번역이 원래의 뜻과 조금 달라져도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적었다.
  앞의 사기 열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문의 대가(大家) 사마천도 이 도덕경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나의 얕은 능력으로는 그저 내가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여러분 앞에 펼쳐 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난해한 글이라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자가 말하고자 중심 사상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빨리 한 번 속독하고 다음에 천천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도덕경은 통상적인 개념과 반대인 것 같은 말이 많다. 그곳에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계속하여 앞으로 나가야 한다. 비슷한 개념이 연이어 나오므로 앞으로 나가면 앞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思想)은 후일에 신선(神仙)사상과 합쳐져서 장수하고 병을 없앤다든지,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 축지법, 은신술, 점치는 것 등과 관계가 있는 듯이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도덕경은 이런 허황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2500 년 전의 사람의 글이지만 순수하게 정신적이다.
  이것을 위에 축지법이나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허황한 사실로 만든 것은 노자보다 정신적으로 모자라는 후대의 사람들이다. 또한 현대에 와서도 노자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각도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런 개념이 없이 노자의 마음을 느끼도록 하자.
참고로 앞에서 소개했던 사기 열전의 노자에 대한 부분을 다시 적는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와 이야기하였다. 노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 ..... 군자는 성덕(盛德)이 있으나 그 용모는 우매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대의 교만한 기상과 욕심 많음과 얼굴과 태도를 꾸미는 일고 산만한 뜻을 버리라. 그런 것은 그대의 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다."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안다. 물고기가 잘 헤엄친다는 것도 안다.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도 나는 잘 안다. 달아나는 자에게는 그물을 칠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질할 수 있으며, 나는 것에게는 주살을 쏘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용에 대하여는 나는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다. 그는 용과 같은 존재이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아서, 그의 학문은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었다. 노자는 작위(作爲)함이 없이 저절로 교화(敎化)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바르게 되게 하였다.
오랫동안 주나라에 살더니 주나라의 덕이 쇠미하게 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함곡관에 이르자 관을 지키는 관리인 윤희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장차 숨으시려고 하시는데, 귀찮으시더라도 저를 위하여 글을 지어주십시오."
  이에 도덕경 상하편 5천 언으로 도와 덕의 뜻을 말하고 가버렸는데, 그의 최후를 아는 사람이 없다.
  H. G. 월즈(공상 과학 소설인 "우주전쟁"을 쓴 사람이나 더 유명한 것은 "세계 문화사 대계"라는 방대한 책이다)의 "세계문화 소사"에는 한 장(章)을 공자와 노자에 할애하였다. 노자에 대한 부분을 옮긴다.
  노자는 오랫동안 주왕조의 국립도서관을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신비적이고 막연하여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쾌락이나 권력에 대한 스토아학파적인 무관심과 과거의 공상적인 단순한 생활에 돌아갈 것을 가르친 것 같다. 그가 남긴 저술은 문체가 매우 간결한데다 의미가 대단히 모호하여 수수께끼와 같다. 노자가 죽은 다음에 그의 가르침은 고타마 불타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타락하고 전설에 얽히어 매우 복잡하게 되었으며, 기이한 의식과 미신적인 사상이 그것에 부착되었다.
임성삼의 주; 서양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말할때는 거의 예외없이 처음에는 약간의 칭찬 후에 결과가 나쁘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서양의 역사를 말할 때는 반대로 기술한다.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기 바란다. 단지 위의 말은 나의 생각과 같은 면이 있다.

[참고; 노자의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site에서 받은 것이다. 아래에 그 site에 있는 참고사항을 적는다.]
이 文書는 老子 道德經의 全文을 실은 것이다. 道德經의 板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文書는 특정 板本을 그 臺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板本의 문서를 참작하였으므로 다소 字句의 加減이 없지 않아 있음을 밝힌다.
本文 중에 다음의 漢字는 컴퓨터 상으로 표기할 수 없어서 편법을 썼으므로, 그 사항을 밝힌다.
(8章) "鍛而銳之"에서 鍛은 원래 (手+ : 타)로 표기하여야 하나, 漢字로 표기할 수 없어서 그 뜻이 비슷한 鍛으로 대체하였다.
(55章) "未知牝牡之合而최作"에서 "최"字는 (血+俊-人: 어린아이고추 최)로 표기하여야 하나, 漢字가 없어서 그 音만 표시하였다.
노자 전문(全文)
(1)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 불변의 도가 아니며,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름은 영원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
무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유는 모든 사물의 모체이다.
[임성삼의 주(註); 노자의 기본 개념은 無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常有,欲以觀其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2)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추악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모든 사람들이 착함을 착함으로 아나, 이것은 착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주(註); 비교되는 것이 없으면 아름다운 것도 착한 것도 있을 수 없다. 아름다운 이가 있으므로 못생긴 사람은 일생을 괴로워하며 보내는 것이 아닌가? 착한 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착하지 않은 사람이 아닌가?
장자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 연못에 다가가더라도 물고기가 도망가는 것을 예로 들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인간들의 기준이며,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故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較,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行不言之敎,
그러므로 성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서 가르침을 행한다.
[임성삼의 주(註); 착하고 아름답다는 것에 치우치면 당연히 추하고 악한 일이 두드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착하다거나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그대로 둔다.]
萬物作焉而不辭,生而不有,
爲而不恃,功成而弗居,
일을 하면서도 공로로 여기지 않고, 공을 이루면서도 공을 자처하지 않는다.
夫唯弗居,是以不去.
(3)不尙賢,使民不爭.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된다.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게 될 것이며
不見可欲,使民心不亂.
욕심될 만 한 것들이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는다.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强其骨.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마음을 비게하고, 배를 부르도록 하여, 의지를 약하게 하며, 골격을 튼튼히 한다.
常使民無知無欲.
그리하여 백성들이 지혜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한다.
使夫智者不敢爲也.
비록 지혜 있는 자라도 감히 그 지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爲無爲,則無不治.
무위를 행하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없어진다.
(4)道沖,而用之,或不盈.淵兮似萬物之宗.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湛兮似常存.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5)天地不仁,以萬物爲 狗.聖人不仁,以百姓爲 狗.天地之間,其猶  乎!虛而不屈,動而愈出,多言數窮,不如守中.
(6)谷神不死,是謂玄牝.
곡신은 죽지 않으며 이것을 현빈이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이것은 어려운 내용이다. 감히 해석하지 않으려 한다.]
玄牝之門,是謂天地根.綿綿若存,用之不勤.
(7)天長地久.天地所以能長且久者,以其不自生.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유구하다. 하늘과 땅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주(註);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출전(出典)]
故能長生.
그러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外其身而身存.非以其無私邪?故能成其私.
(8)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衆人之所惡.故幾於道.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모든 사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물은 여러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물은 도(道)에 가깝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므로 환경공학에서는 물을 중요시한다. 상선약수의 출전(出典)]
居善地,心善淵,與善仁,言善信,正善治,事善能,動善時.夫唯不爭,故無尤.
(9)持而盈之, 不如其已.鍛而銳之, 不可長保.
이미 가득차게 가짐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이미 날카로운 것을 더 예리하게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임성삼의 주(註); 흔히 말한다. 부드러운 혀는 사람이 늙어 죽을 때까지 고장나는 법이 거의 없고, 굳은 치아(齒牙)는 나이가 들면 결국은 모두 빠진다고...]
金玉滿堂, 莫之能守.富貴而驕, 自遺其咎.
금과 옥이 집에 가득차면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 부귀하고 교만하면 스스로 화를 불러 일으킨다.
功遂身退, 天之道.
공을 이루고 몸을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10)載營魄抱一,能無離乎!專氣致柔,能孀兒乎!滌除玄覽,能無疵乎!愛民治國,能無知乎!天門開闔,能無雌乎!明白四達,能無爲乎!生之畜之.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是謂玄德.
(11)三十輻共一 ,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있다. (바퀴와 축 사이에) 공간이 있으므로 수레가 굴러가는 것이다.
 
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찰흙에 물을 부어 그릇을 만든다. 그릇 안이 비어 있음으로써 그릇으로 쓸 수가 있다.
鑿戶爽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방안에 빈 공간이 있으므로 방을 사용할 수 있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그러므로 위의 수레나 그릇과 집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곧 비어있는 곳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주(註); 유명한 부분이다. 빈 것(無)의 유용성을 가장 잘 말한 문장이다. 우리의 마음도 욕심 없이 비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
현란한 색은 오히려 색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며, 여러 가지 소리는 오히려 귀로 소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며, 여러 가지 맛은 진정한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馳騁 獵令人心發狂.難得之貨令人行妨.
(즐거운 놀이인) 말타기와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을 방해한다.
是以聖人爲腹不爲目.故去彼取此.
(13)寵辱若驚, 貴大患若身.何謂寵辱若驚?寵爲上,辱爲下,得之若驚,失之若驚.是謂寵辱若驚.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及吾無身, 吾有何患?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천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겨도 좋을 것이다.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듯이 천하를 사랑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겨도 좋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격은 이것뿐이라는 것을 알자. 자기 몸만, 혹은 자기의 명성만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없다.]
(14)視之不見, 名曰夷.聽之不聞, 名曰希.搏之不得, 名曰微.此三者,不可致詰.故混而爲一.其上不 ,其下不昧.繩繩不可名.復歸於無物.是謂無狀之狀,無物之象.是謂恍惚.迎之不見其首,隨之不見其後.執古之道,以御今之有,能知古始,是謂道紀.
(15)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옛날에 훌륭한 선비들은 신비하고 심오하며, 사물에 통달하여 그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알 수가 없으므로 억지로 형용해보면
豫兮若冬涉川,
머뭇거림은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려는 것 같고,
猶兮若畏四隣,
조심하는 것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고,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수 많은 군대를 이끌 때는 어떤 사람과 같이 지휘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잡고, 강을 건너 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과는 함께 군대를 이끌지 않겠다. 조심스럽고, 좋은 계책을 내어 이루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군대를 지휘하겠다."]
儼兮其若容,
엄숙하고 의젓한 모습은 손님과 같다.[번역이 이상함]
渙兮若氷之將釋,
융화하는 모습은 얼음이 녹아 풀리는 것 같고
敦兮其若樸,
소박한 모습은 나무 둥치 같다.
曠兮其若谷,
마음이 트인 것은 산골짜기와 같으며
混兮其若濁.
모든 것을 포용함은 탁류와 같다.
孰能濁以靜之徐淸?
누가 탁류를 고요하게 정지시켜 천천히 맑게 할 수 있는가?
孰能安以久動之徐生?
누가 안정한 것을 움직여서 천천히 생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
保此道者, 不欲盈.
이런 도를 지키는 사람은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夫唯不盈, 能蔽復成.
(16)致虛極,守靜篤,萬物竝作,吾以觀其復.夫物芸芸,各復歸其根.歸根曰靜,靜曰復命,復命曰常,知常曰明.不知常,妄作凶.知常容,容乃公,公乃王,王乃天,天乃道.道乃久,沒身不殆.
(17)太上下知有之.其次親而譽之.其次畏之.其次侮之.
가장 훌륭한 임금은 아래 백성들이 오직 임금이 위에 있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가지며 예찬한다.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이 두려워한다.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이 그를 업신여긴다.
信不足焉, 有不信焉.悠兮其貴言.
임금에게 믿음성이 없으면 백성이 그를 믿지 않는다. 조심하여 말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훌륭한 임금이)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여도 백성들은 모두 우리 자연(自然)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임성삼의 주(註); 아래의 4 줄이 노자와 맹자가 주장하는 기본적인 사항이다.]
(18)大道廢, 有仁義.
큰 도가 없어지니 인(仁)이니 의(義)니 하는 것이 생기고,
慧智出, 有大僞.
지혜라는 것이 나타나니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六親不和, 有孝慈.
모든 친척이 불화하니 효도와 사랑을 말하게 되었고,
國家昏亂, 有忠臣.
국가가 혼란하니 충성스런 신하가 있게 되었다.
(19)絶聖棄智, 民利百倍.
성스럽다는 것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 배나 늘어날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원래 공자, 맹자나 노, 장사상에서는 이익을 말하지 않는다. 논어에는 "공자님은 이익에 대하여는 매우 드믈게 말하였다(子罕言利)"라고 말하였으며, 맹자의 첫 머리에 "하필이면 이익을 말합니까(何必曰利)"라는 말이 있다.
이익을 유교보다 더 싫어하는 노자가 이익으로 말하는 것은 백성의 이익을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은 백성의 이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絶仁棄義, 民復孝慈.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리면, 백성들은 효도하고 자애(慈愛)한 사람이 될 것이다.
絶巧棄利, 盜賊無有.
기교를 없애고 이익을 버리면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위의 세 가지를 잘 생각해 보자.]
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20)絶學無憂.
학문을 없애면 인간에게 근심이 없어질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옛부터 서당의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던 말이었을 것이다.그래서 도덕경을 서당에서 배워주지 않았을런지.]
唯之與阿, 相去幾何?
"예"하고 대답하는 것과 "응"하고 대답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임성삼의 주(註); 예절을 싫어하는 노자도 이 차이가 대단하다고 인정하였다.]
善之與惡, 相去何若?
선과 악은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 것인가?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그러나 나는 세상사람들과 거리가 멀어 가이없구나.[번역과 원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으나 잘 알 수 없다.]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세상의 사람들은 기뻐 웃으며 소나 양의 맛있는 고기를 즐기며 봄 동산에 오른 듯하다.
我獨 兮其未兆,如 兒之未孩,  兮若無所歸.
나는 홀로 텅 빈 마음으로 고요히 있네. 세속적인 욕망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가 아직 웃을 줄을 모르는 것 같다. 피로한 모습이 돌아갈 곳이 없는 듯하다.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모든 사람들은 세속적 욕망에 차 있는데 나만 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하다. 나의 마음은 어리석은 마음인가, 흐리멍덩하여 아무런 분별도 없는 것 같구나.
俗人昭昭, 我獨若昏.
세상 사람들은 모두 똑똑한데 나는 홀로 흐리고 어둡기만하네
俗人察察, 我獨悶悶,
세상 사람들은 사리에 밝고 빈틈없이 잘 살피는데, 나만 홀로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네
澹兮其若海, 兮若無所止,
바다처럼 안정되고 고요하며, 흘러가는 배처럼 구속이 없구나
衆人皆有以,而我獨頑似鄙.
세상사람은 모두 쓸모가 있으나, 나만 홀로 완고하고 촌스럽기만 하네
我獨異於人,而貴食母.
나만 홀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생(生)의 근원을 소중히 여기네
[임성삼의 주(註); 우리 선조님들께서 쓰린 마음의 위안을 받으시던 구절이다.]
    
(21)孔德之容,唯道是從.道之爲物,唯恍唯惚.惚兮恍兮,其中有象.恍兮惚兮,其中有物.窈兮冥兮,其中有精.其精甚眞,其中有信.自古及今,其名不去,以閱終甫.吾何以知終甫之然哉?以此.
(22)曲則全.枉則直.窪則盈.幣則新.少則得.多則惑.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그러므로 성인은 오직 하나의 도(道)만을 굳게 지켜 천하의 모범이 된다.
不自見, 故明.不自是, 故彰.
성인은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므로 현명해지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그 옳은 것이 드러난다.
不自伐, 故有功.不自矜, 故長.
성인은 스스로 뽑내지 않으므로 성공할 수 있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그 공은 오래간다.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성인은 도무지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가 그와 다툴 수가 없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나 노자를 가장 잘 이어받은 장자는 천하의 모든 변사(辯士)들과 다투어 이겼다.]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옛 말에 굽으면(曲) 온전하게 된다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진실로 온전해지면 그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23)希言, 自然.
희언은 자연스럽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 그대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孰爲此者? 天地.
회오리바람은 하루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온종일 오는 법이 없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天地)가 한다.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천지도 이런 부자연스러운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자연에 어긋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겠는가?
故從事於道者,道者同於道,德者同於德,失者同於失.同於道者,道亦樂得之.同於德者,德亦樂得之.同於失者,失亦樂得之.信不足焉,有不信.
(24)企者不立.跨者不行.
발끝을 젖혀 디딘 사람은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린 사람은 걸을 수 없다.
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
스스로 나타내는 자는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으며, 스스로 잘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다.
自伐者無功.自矜者不長.
스스로 칭찬하는 자는 성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임성삼의 주(註); 노자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요즈음이 PR의 시대라고 하여도 노자가 옳다고 본다. 서양 사람들도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을 야비하게 본다.]
其在道也, 曰餘食贅行.物有惡之.
이러한 모든 일은 도의 입장에서 보면 남은 음식 같고 거절당한 방문(訪問) 같아서 남이 미워한다.
故有道者不處也.
그러므로 도를 가진 사람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다시 강조하지만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것이 노자의 기본이다.]
(25)有物混成, 先天地生.
혼돈 상태에서 생긴 것이 있으니,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寂兮寥兮,獨立不改,周行而不殆,可以爲天下母.
고요하고 소리가 없으며, 독립하여 있으면서 변하지 않는다. 어디나 모두 가지만 위태롭지 않다. 이것을 천하의 어머니라 한다.
吾不知其名,字之曰道,强爲之名曰大.大曰逝,逝曰遠,遠曰反.故道大.天大,地大,王亦大.域中有四大,而王居其一焉.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26)重爲輕根,靜爲躁君.是以聖人終日行,不離輜重.雖有榮觀,燕處超然.柰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輕則失本,躁則失君.
(27)善行無徹迹, 善言無瑕謫.
착한 행동에는 자국이 없고, 착한 말에는 허물이 없다.
善數不用籌策.善閉無關楗而不可開,善結,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常善救物,故無棄物.是謂襲明.
성인은 항상 선으로 사람을 구제하므로 버리는 사람이 없다. 도에 순응하여 조작함을 드러내는 일이 없이 저절로 감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밝음이라 한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不善人者, 善人之資.
그러므로 선량한 사람은 불선인(不善人)의 스승이 되고, 불선한 사람은 선량한 사람의 수양에 필요한 재료가 된다.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是謂要妙.
성인은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라고 귀중히 여기지 않고, 불선한 사람이라고 하여 미워하지 않는다. 성인은 지혜가 있으나 크게 우매한 것 같다. 이것이 필요하고도 미묘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28)知其雄,守其雌,爲天下谿.爲天下谿,常德不離,復歸於孀兒.知其白,守其黑,爲天下式.爲天下式,常德不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영예를 누릴 길을 알면서, 굴욕을 참고 견딘다면 물이 모여드는 골짜기처럼 천하의 인심이 모여들 것이다.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樸散則爲器.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면 덕은 항상 풍족하게 되어 다시 원목처럼 소박하게 될 것이다. 원목은 쪼개져서 여러 가지 기물이 만들어 질 것이다.
聖人用之, 則爲官長.故大制不割.
성인은 이러한 것을 사용하여 관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원칙만 사용하고 세분하지 않는다.
(29)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장차 천하를 얻으려고 조작한다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天下神器, 不可爲也.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는 신비로운 그릇과 같아서 인공으로 조작할 수 없다. 조작하려 하는 자는 실패한 것이며, 가지려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아마 현재도 옳을 것이다.]
故物或行或隨,或噓或吹,或强或羸,或接或墮,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그러므로 성인은 심한 것, 사치한 것, 교만한 것을 버린다.
(30)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其事好還.
도(道)로써 군주를 돕는 사람은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천하를 도모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은 응보가 돌아온다.
師之所處,荊棘生焉.大軍之後,必有凶年.善者果而已,不敢以取强.果而勿矜,果而勿伐,果而勿驕,果而不得已,果而勿强.物壯則老,是謂不道.不道早已.
(31)夫佳兵, 不祥之器, 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
대개 훌륭한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 세상은 그것을 증오한다. 그러므로 도가 있는 사람은 무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君子居則貴左,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므로 군자가 사용할 물건이 아니다.
[임성삼의 주(註); 병자 불상지기(兵者 不祥之器)는 옛 글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부득이 사용하는 경우에 욕심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싸워서 승리하더라도 좋게 여겨서는 안 된다.
而美之者, 是樂殺人.
좋게 여기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이룰 수 없다.
吉事尙左,凶事尙右.偏將軍居左,上將軍居右,言以喪禮處之.殺人之衆,以哀悲泣之.戰勝,以喪禮處之.
(32)道常無名.
도는 항상 이름이 없다
.
[임성삼의 주(註); 도라는 것의 개념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한 것이다. 일단 정의해 놓으면 그 정의에 의해 제한된다.]
樸雖小,天下莫能臣也.侯王若能守之,萬物將自賓.天地相合,以降甘露.民莫之令而自均.始制有名.名亦旣有,夫亦將知止.知止,不殆.譬道之在天下,猶川谷之於江海.
(33)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나, 자기를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한 것이고, 근면하게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 사람은 장수하고, 죽을 힘을 다해 삶의 길을 찾아 그치지 않는 사람을 오래산다.
(34)大道氾兮,其可左右.萬物恃之而生,而不辭.功成,不名.有衣養萬物,而不爲主,常無欲,可名於小.萬物歸焉,而不爲主,可名爲大.以其終不自爲大,故能成其大.
(35)執大象,天下往,往而不害,安平太.樂與餌,過客止.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足旣.
(36)將欲 之, 必固張之.將欲弱之, 必固强之.
장차 수축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확장해야 한다. 장차 약해지려면 반드시 먼저 강해야 한다.
將欲廢之, 必固興之.將欲奪之, 必固與之.是謂微明.
장차 없애려 한다면 반드시 흥하게 해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은밀한 총명이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약간 각박한 말이나 이 말을 함으로써 악한 사람이 흥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柔弱勝剛强.魚不可脫於淵.
부드럽고 약한 것이 모질고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억센 물고기가 부드러운 못물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37)道常無爲, 而無不爲.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임성삼의 주(註); 공자도 "하늘은 말하지 않으나 네 계절이 순서대로 돌아오고, 곡식이 이삭을 맺는다. 나는 앞으로 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侯王若能守之,萬物將自化.化而欲作,吾將鎭之,以無名之樸.無名之樸,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욕심을 내지 않고 고요히 있으면 천하는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38)上德不德, 是以有德.
높은 덕을 가진 사람은 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이 있게 되는 것이다.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낮은 덕을 가진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덕이 없게 되는 것이다.
上德無爲, 而無以爲, 下德爲之, 而有以爲.
높은 덕을 가진 사람은 하려고 함이 없으므로 조작함이 없다. 낮은 덕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일하려고 하여 조작함이 있다.
上仁爲之,而無以爲,上義爲之,而有以爲.上禮爲之,而莫之應,則攘臂而仍之.
故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소용되며, 덕을 잃은 뒤에 인이 소용되고, 인을 잃은 뒤에 의가 소용되며, 의를 잃은 뒤에 예절이 소용되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노자와 장자의 기본 개념이다. 공자의 개념과 다른 것이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대체로 예절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은 충과 믿음이 박약하다는 것으로 장차 어지러워지려는 시작이다.
前識者,道之華,而愚之始.是以大丈夫處其厚,不居其薄.處其實,不居其華.故去彼取此.
(39)昔之得一者.
과거부터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다.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으며,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며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신은 하나를 얻어 신령하며, 계곡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다.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正.
만물은 하나를 얻어 살아있고, 군주는 하나를 얻어 천하에 공정하다.
其致之一也.
그 극치에서는 하나일 뿐이다.
天無以淸, 將恐裂.地無以寧, 將恐發.
하늘에 맑음이 없으면 하늘은 장차 분열할 것이고, 땅이 편안함이 없으면 장차 황폐할 것이다.
神無以靈, 將恐歇.谷無以盈, 將恐竭.
신이 신령함이 없으면 장차 고갈될 것이고, 계곡이 채워질 수 없다면, 장차 마를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하나는 무엇인가?]
萬物無以生,將恐滅.侯王無以貴高,將恐蹶.故貴以賤爲本,高以下爲基.是以候王自謂孤寡不穀.此非以賤爲本邪?非乎?故致數譽無譽.不欲  如玉,珞珞如石.
(40)反者,道之動.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천하만물의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
(41)上士聞道, 勤而行之.中士聞道, 若存若亡.下士聞道, 大笑之.不笑, 不足以爲道.
상등의 선비가 도(道)를 들으면 근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중등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하등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하등의 선비가 웃지 않는 도는 도라고 할만한 것이 못된다.
故建言有之,明道若昧,進道若退,夷道若 ,上德若俗.
그러므로 이런 말이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가는 길은 뒤로 가는 길 같고, 평탄한 길은 기복이 있는 길 같고, 최상의 덕은 속된 것 같다.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質眞若 ,
크게 흰 것은 검은 것 같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것 같고, 건전한 덕은 구차한 것 같고, 질박한 덕은 퇴색한 것 같다.
大方無隅, 大器晩成,大音希聲, 大象無形.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는 것 같고, 큰 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 큰 음은 들을 수 없으며,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임성삼의 주(註); 대기만성의 원전?]
道隱無名.夫唯道,善貸且成.
(42)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을 셋을 낳으며, 셋은 만물을 낳는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도 철학적으로 해석되어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다.]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爲和.人之所惡,唯孤寡不穀,而王公以爲稱.故物或損之而益,或益之而損.人之所敎,我亦敎之.强梁者,不得其死.吾將以爲敎父.
(43)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물은 천하에 가장 굳은 바위를 향해 돌진한다.
無有入無間.吾是以知無爲之有益,不言之敎,無爲之益,天下希及之.
(44)名與身孰親?身與貨孰多?得與亡孰病?是故甚愛必大費,多藏必厚亡.
故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그러므로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 유지될 수 있다.
(45)大成若缺, 其用不弊.
크게 이루어진 것은 어딘지 모자란 것 같고, 그 효용은 끊임이 없다.
大盈若沖, 其用不窮.
크게 충만한 것은 공허한 것 같고, 그 작용은 끝이 없다.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뛰어난 기교는 졸렬한 것 같으며, 뛰어난 웅변은 눌변인 것 같다.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를 바르게 한다.
(46)天下有道, 却走馬以糞.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罪莫大於可欲,禍莫大於不知足,咎莫大於欲得.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고,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으며, 남의 것을 가지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故知足之足, 常足矣.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아는 만족은 항상 만족한다.
(47)不出戶知天下, 不窺爽見天道.
문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모든 것을 알며, 창 밖을 엿보지 않고도 천도를 알 수 있다.
其出彌遠, 其知彌少.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그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그러므로 성인은 그곳에 가지 않고 알며, 보지 않고 이름지을 수 있고, 일을 하지 않고 성취시킨다.
(48)爲學日益, 爲道日損.
학문을 하면 매일 할 일이 많아지고, 도를 실행하면 날마다 할 일이 줄어든다.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줄고 또 줄어 하는 일이 없게 된다. 이 경지에 이르면 하는 일은 없어도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
取天下, 常以無事.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천하는 차지하는 데도 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한다. 하는 일이 있으면 천하를 차지하기에 부족한 경지이다.
[임성삼의 주(註); 실제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나라의 모든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알맞는 사람을 선택하여 각자에게 일을 맡기면 대통령의 일이 끝나는 것이다.]
(49)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고정된 마음이 없고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성인이 되는 비결이다.]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德善.
착한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나쁜 사람도 내가 좋아하면, 모두 착한사람이 된다.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德信.
믿음성이 있는 사람도 믿고, 믿음성이 없는 사람도 믿으면, 모두 믿음성이 있는 사람으로 된다.
聖人在天下,   爲天下, 渾其心.
성인은 천하에 대하여 무심의 상태로 대하면 그 마음이 혼연일체가 된다.
而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그래서 백성이 귀와 눈을 성인에게 집중하고, 성인은 백성을 어린아이와 같이 대우한다.
(50)出生,入死.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夫何故?以其生生之厚.蓋聞,善攝生者,陸行不遇 虎,入軍不被甲兵. 無所投其角,虎無所措其爪,兵無所容其刃.夫何故?以其無死地.
(51)道生之,德畜之,物形之,勢成之.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道之尊,德之貴,夫莫之命,而常自然.故道生之,德畜之,長之育之,成之熟之,養之覆之.生而不有,爲而不恃,長而不宰.是謂元德.
(52)天下有始,以爲天下母.旣得其母,以知其子.旣知其子,復守其母.沒身不殆.塞其兌,閉其門,終身不勤.開其兌,濟其事,終身不救.
見小曰明,守柔曰强.用其光,復歸其明,無遺身殃.是爲襲常.
(53)使我介然有知,行於大道,唯施是畏.大道甚夷,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服文綵,帶利劍,厭飮食,財貨有餘,是謂 盜.非道也哉!
궁궐은 깨끗하나 논밭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었으나 궁정의 사람들은 비단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찼으며, 음식을 너무 먹어 싫어할 정도가 되었고, 재물이 남아돈다. 이것을 도둑이라 한다. 도가 아니지 않은가?
[임성삼의 주(註); 날카로운 이야기이다. 이것을 도둑이라 한다. 도가 아니지 않은가?]
(54)善建者不拔,善抱者不脫.子孫以祭祀不輟.修之於身,其德乃眞.修之於家,其德乃餘.修之於鄕,其德乃長.修之於國,其德乃豊.修之於天下,其德乃普.
故以身觀身,以家觀家,以鄕觀鄕,以國觀國,以天下觀天下.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내 몸으로 남의 몸을 관찰하고, 내 집으로 남의 집을 관찰하며, 나의 고을 일로 남의 고을 일을 관찰하며, 내 나라 일로 남의 나라 일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천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알 수 있다
.
[임성삼의 주(註); 4 서 3 경 중의 대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동기준으로 "혈구의 도"를 말한다. 이것은 내가 아랫사람에게 바라는 것으로 윗사람을 대하고, 오른쪽 사람이 나에게 행해 싫었던 일을 왼쪽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55)含德之厚,比於赤子.毒蟲不 ,猛獸不據,攫鳥不搏.骨弱筋柔而握固.未知牝牡之合而최作,精之至也.終日號而不 ,和之至也.知和曰常,知常曰明.益生曰祥,心使氣曰强.物壯則老,謂之不道.不道早已.
(56)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모든 사람의 입을 막아놓았다.]
塞其兌,閉其門,挫其銳,解其分.和其光,同其塵.是謂玄同.故不可得而親,不可得而疏.不可得而利,不可得而害.不可得而貴,不可得而賤.故爲天下貴.
(57)以正治國,以奇用兵,以無事取天下.吾何以知其然哉?以此.天下多忌諱,而民彌貧.民多利器,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法令滋彰, 盜賊多有.
사람들에게 기교가 많으면 괴상한 물건이 많이 나오게 되고, 법이 많으면 도둑이 많게 된다.
故聖人云,我無爲而民自化,我好靜而民自正,我無事而民自富,我無欲而民自樸.
그러므로 성인은 내가 무위(無爲)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하게 되며,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질박해진다고 하였다.
(58)其政悶悶,其民淳淳.其政察察,其民缺缺.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孰知其極?其無正.正復爲奇,善復爲妖.人之迷,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廉而不 ,直而不肆,光而不燿
그러므로 성인은 모가 나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고, 청렴하면서도 해치지 않으며, 속직하면서도 편벽하지 않으며, 밝으면서도 남의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이 광이불요(光而不燿)는 그 후 동양 역사에서 자주 인용되는 몇 가지 말 중의 하나이다. 사람의 밝은 지혜는 남의 눈이 부실 정도로 나타내서는 안된다.]
(59)治人事天莫若嗇.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것은 농부처럼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夫唯嗇,是謂早服.早服,謂之重積德.重積德,則無不克.無不克,則莫知其極.莫知其極,可以有國.有國之母,可以長久.是謂深根固 ,長生久視之道.
(60)治大國, 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임성삼의 주(註); 여러 해석이 있다.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작은 생선을 끊는 물에 오래 삶으면 무두 흩어져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서서히 낮은 불로 삶아라.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이것으로 족하다.]
以道 天下,其鬼不神.非其鬼不神,其神不傷人.非其神不傷人,聖人亦不傷人.夫兩不相傷,故德交歸焉.
(61)大國者下流,天下之交.天下之牝.牝常以靜勝牡,以靜爲下.故大國以下小國,則取小國.小國以下大國,則取大國.故或下以取,或下而取.大國不過欲兼畜人,小國不過欲入事人.夫兩者各得其所欲,大者宜爲下.
(62)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도란 만물의 본질이고, 선인을 보물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의 보호처이다.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人之不善, 何棄之有
착한말은 가치가 있고, 고상한 행동은 존경을 받는다.
착하지 않은 사람인들 어떻게 버리겠는가?
故立天下,置三公.雖有拱壁以先駟馬,不如坐進此道.古之所以貴此道者何?不曰,以求得,有罪以免邪?故爲天下貴.
(63)爲無爲, 事無事, 味無味.大小多少, 報怨以德
무위를 행하고, 무사(無事)를 일로 삼으며, 무미를 맛으로 여겨라. 작은 것을 크게, 적은 것을 많은 것으로 하고,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
[임성삼의 주(註); 이와 비슷한 주제에 대하여는 공자와 예수의 다음 이야기가 있다.
  공자에게 제자(弟子) 자공이 물었다. "나에게 해롭게 한 사람에게 덕으로 갚으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러면 나에게 은혜를 준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으려느냐? 원수에게는 바름(正)으로 갚고, 은혜에는 덕으로 갚으라."
  예수의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잘 알려진 것이 있다. "누가 너의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밀어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어려운 것은 쉬운 것으로부터,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부터,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미세한 일부터 시작된다.
是以聖人終不爲大.故能成其大.
성인은 결코 큰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큰 것을 성취하게 된다.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대체로 가볍게 승낙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고,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이 많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오히려 쉬운 일을 어렵게 여겼다. 따라서 성인은 끝내 어려운 것이 없다.
(64)其安易持, 其未兆易謀.其脆易破, 其微易散.
편안할 때 위태한 것을 잊지 않으면 보전하기 쉽다.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우기가 쉽다. 취약한 것은 깨뜨리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 버리기 쉽다.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그러므로 나타나기 전에 대책을 세우고, 어지럽게 되기 전에 미리 다스려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이러자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개념으로 가능할까? 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단지 지혜를 더 사용하여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비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合抱之木,生於毫末,九層之臺,起於累土,千里之行,始於足下.爲者敗之,執者失之.是以聖人無爲,故無敗.無執,故無失.民之從事,常於幾成而敗之.愼終如始,則無敗事.是以聖人欲不欲,不貴難得之貨.學不學,復衆人之所過.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65)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民之難治, 以其智多.
옛날에 도를 잘 실천한 사람들은 백성을 현명하게 만들지 않고 어리석도록 지도했다. 백성들이 다스리기 곤란한 것은 그들이 많은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도둑이 되고,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 된다.
知此兩者,亦楷式.常知楷式,是謂玄德.玄德,深矣遠矣.與物反矣,乃至於大順.
(66)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故能爲百谷王.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강과 바다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다.
[임성삼의 주(註); 아래에 있음으로써 모든 계곡의 물을 받을 수 있다.]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欲先民, 必以身後之.
그러므로 백성의 위에 있고자하면 반드시 말로써 백성의 아래에 있어야 한다. 백성의 앞에 있으려 하면, 반드시 몸을 백성의 뒤에 두어야 한다.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그러므로 성인이 백성의 위에 있어도 백성은 위압을 느끼지 않고, 백성의 앞에 있어도 백성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是以天下樂推而不厭.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그러므로 천하가 즐겨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또 성인은 다투려하지 않으므로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
(67)天下皆謂我道大似不肖.夫唯大,故似不肖.若肖,久矣其細.
夫我有三寶, 持而寶之.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나는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이고, 둘째는 검약이며, 셋째는 감히 천하보다 앞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
慈故能勇,儉故能廣,不敢爲天下先故能成器長.
자애스럽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으며, 검소하기 때문에 재물을 널리 베풀 수 있으며, 천하보다 앞서지 않으므로 기틀의 으뜸이 될 수 있다.
[임성삼의 주(註); 적어도 앞의 두 가지는 사실이다.]
今舍慈且勇,舍儉且廣,舍後且先,死矣.夫慈以戰則勝,以守則固.天將救之,以慈衛之.
(68)善爲士者不武,善戰者不怒,善勝敵者不爭,善用人者爲之下.
선비의 역할을 잘하는 사람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성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사람은 적과 대전하지 않으며, 사람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그 앞에 몸을 낮춘다.
是謂不爭之德,是謂用人之力,是謂配天,古之極.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이라 부른다. 이것은 하늘의 극한 법칙에 일치하는 것이라 한다.
(69)用兵有言,吾不敢爲主而爲客,不敢進寸而退尺.
용병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않고 피동자가 된다. 감히 한 치도 전진하지 않고 한 자씩 후퇴한다.
[임성삼의 주(註); 실제로 계속 후퇴하여 성공한 사람도 많다. 한 고조는 항우와 마주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후퇴하였으나 결국은 항우를 잡아 죽이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是謂行無行,攘無臂, 無敵,執無兵.禍莫大於輕敵.輕敵幾喪吾寶.故抗兵相加,襄者勝矣.
(70)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쉽다. 그러나 천하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며 행하지 못한다.
言有宗,事有君.夫唯無知,是以不我知.知我者希,則我者貴.是以聖人被褐懷玉.
(71)知不知上, 不知知病.夫唯病病, 是以不病.
알면서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성인은 병이 없다. 그것은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되지 않는다.
(72)民不畏威, 則大威至矣.無狹其所居, 無厭其所生.夫唯不厭, 是以不厭.是以聖人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故去彼取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알지만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며, 스스로 사랑하지만 스스로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싫어하는 일을 버리고 즐거움을 택한다.
(73)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용맹에 과감하면 죽임을 당하고, 용맹에 과감하지 않으면 산다.
此兩者或利或害.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이 두 가지는 혹은 이롭기도 하고 혹은 해롭기도 하다. 하늘이 미워하는 바의 까닭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성인도 오히려 어렵게 여겼다.
天之道,不爭而善勝,不言而善應,不召而自來, 然而善謀.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대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묵묵히 있어도 잘 도모한다.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성기나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유명한 글귀이다. 천망회회 소이불실.
전에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노자와 거의 동일한 시대 사람인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이 법을 만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법망(法網)이란 힘없는 작은 사람들은 걸려도, 힘있는 큰 사람은 모두 빠져 나가는 것이오."
동일한 그물을 사용하여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야기하였다.]
(74)民不畏死,奈何以死懼之?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吾得執而殺之,孰敢?常有司殺者殺.夫代司殺者殺,是謂代大匠 .夫代大匠 者,希有不傷其手矣.
(75)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윗사람이 세금을 받아 먹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굶주리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사람이 조작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스리기 어렵다.
民之輕死,以其上生生之厚,是以輕死.夫唯無以生爲者,是賢於貴生.
(76)人之生也柔弱,其死也堅强.萬物草木之生也柔脆,其死也枯槁.故堅强者死之徒,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强大處下, 柔弱處上.
그러므로 군사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며, 나무가 강하면 꺾어진다. 강한 것은 아래에 있게되고 유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된다.
[임성삼의 주(註); 중국을 무력으로 점령했던 그 많은 힘있는 종족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77)天之道,其猶張弓與!高者抑之,下者擧之.
有餘者損之,不足者補之.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人之道則不然,損不足以奉有餘.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나,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부족한 것을 덜어서 남음이 있는 것이 받는다.
[임성삼의 주(註); 세금을 내는 평민과 세금을 받아 풍부히 사용하는 국회의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누가 남음이 있어 천하를 받들어 줄 수 있는가? 오로지 도가 있는 사람뿐이다.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其不欲見賢.
그러므로 성인은 공을 이루고도 자긍(自矜)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자처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명한 것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78)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莫之能勝,以其無以易之.
천하에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이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어떤 것으로도 이것과 바꿀 수 없다.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가 모르는 바 아니나 실행하지 않는다.
是以聖人云,受國之垢,是謂社稷主,受國不祥,是謂天下王.正言若反.
이것이 성인이 말씀하신 나라의 온갖 더러움을 받아들이는 자가 사직의 주인이고, 나라의 여러 상서롭지 않은 일을 자신에게 받아들이는 자를 천하의 왕이라 한 것이다. 바른 말은 마치 반대되는 것 같다.
(79)和大怨, 必有餘怨.安可以爲善?
큰 원한을 화해하여도 반드시 남은 원한이 있게된다. 그것이 어찌 선이 되겠는가?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의 도는 사사로운 친애가 없고, 항상 착한 사람의 편이다.
[임성삼의 주(註); 옳다! 그래야 한다.
현실에 그렇지 않은 일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이 말이 진리가 아닐 수는 없다.]
(80)小國寡民.使有什佰之器而不用.使民重死而不遠徙.雖有舟輿, 無所乘之.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백성들을 다시 노끈을 맺어 글자 대신 사용하던 소박한 상태로 복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달게 먹고, 의복을 아름답게 입고, 거처하는 데 편안하고, 풍속을 즐길 것이다.
隣國相望,鷄犬之聲相聞,民至老死不相往來.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리나,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를 않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과거 중국 사람들이 설정한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만일 서로 왕래한다면 아무래도 다툼이 생길 것이다.]
(81)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믿음성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知者不博, 博者不知.
사물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으며, 박식한 사람은 잘 알지 못한다.
[임성삼의 주(註); 실제로 그렇지 않을까?]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성인은 쌓아두지 않는다. 이미 남을 위해 다 사용하였으나 쓰면 쓸수록 자기에게는 더 있게 되고, 이미 남에게 다 주었으나 주면 줄수록 자기에게는 더욱 많아진다.
[임성삼의 주(註); 석가, 예수, 노자 모두가 이것을 실현하고, 이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분들이다.]
天之道, 利而不害.聖人之道, 爲而不爭.
하늘의 도는 이롭게는 하여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성인의 도는 하는 것이 있어도 다투지는 않는다.
"끝"

  노자(老子)는 큰 것을 말하는 책이다. 노자의 말을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다. 노자의 개념을 잘 발전시킨 장자의 "남화경"[흔히 장자라고 부르는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북극 바다에 한 마리 고기 있어 곤(鯤)이라 부르나니,
그 몸이 하도 커서 몇 천리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어느날 한 마리 새로 탈바꿈하여 붕(鵬)이라 이름하니,
붕새는 더욱 커서 그 등짝만 해도 몇 천리나 되게 넓었다.
푸드렁 하늘을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장과도 같았다.
붕조는 바다가 뒤끓게 모진 바람이 일 때마다 남극 바다로 옮겼고,
무한히 넓은 남극 바다는 하늘의 못이라고 불렀다.
<제어>라는 책엔,
"붕조가 남극 바다로 옮길 때엔 날개가 너무 커서 처음엔 3천 리나 멀리 수면을 치면서 날다가, 거기서 일어나는 바람을 타고 9만 리 장천에 오른다."
  봄날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하늘에 하느적거리는 먼지처럼 가득히 쌓여 있고, 모든 생물들은 서로 숨을 내뿜는다. 저 하늘을 짙푸름은 본래 빛깔일까? 아니 저렇게도 먼 것은 짙푸르게 보이는 것일까? 붕새가 하늘을 날 때 이 지상을 보면 역시 이렇게 푸르기만 할까?
  무릇 물이 낮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한 잔의 물을 옴푹 패인 뜰에 부었을 때, 겨자 한 개는 뜨지만 거기에 하나의 잔을 띄우면 땅에 걸리고 만다. 물은 낮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체적이 작으면 커다란 새의 날개를 받칠 수 없다. 그 날개가 제 아무리 9만 리 장천에 올라도 그 날개 밑으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붕조는 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등을 저 아득한 하늘에 번득이며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이 남극을 찾아 훨훨 날아간 것이다.
  말매미와 어린 비둘기가 붕조를 보고 비웃으며,
"나는 때로 재빨리 날아 느릅이나 박달나무 있는 데를 갈 수 있지만, 반드시 바람이 있어야 하진 않았고, 때로는 높은 나무에 이르지 못한 채 땅에 떨어지는 수도 있지만, 반드시 바다를 건너 9만 리 장천에 이르렀다가 남극에 갈 거야 없지 않은가?" 했다.
  그 말매미나 새끼 비둘기가 어찌 붕새의 뜻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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