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아 꽃과 할머니 이야기-- 보리고개시절
2012.11.09 12:10
아카시아 꽃과 할머니, | |
육영수 여사 지시로 찾아간 성남 달농네 판잣집에선… | |
김 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 |
북한에서 만난 북녘 동포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쇠고깃국에 흰 쌀밥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것이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가슴 아픈 소원인가. 그들이라고 왜 고대광실에 천석꾼으로 살고 싶은 꿈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런 꿈을 갖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고 처참해서 그런 사치스런 꿈이나 희망은 다 저버린 것이 아닐까 .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도 불과 사십 여년 전만 해도 쌀밥을 온 가족이 배불리 먹어 보는 게 소원인 때도 있었다. 인구는 많고 식량은 절대량이 부족해 심지어 밤나무 같은 유실수 재배를 권장해 그 열매로 주린 배를 채워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지난 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70년대초 아카시아꽃이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해 5월 하순이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한 가정주부로부터 청와대 육영수 여사님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의 남편이 서울역 앞에서 행상을 해서 다섯 식구의 입에 겨우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얼마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굶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과 어린 자식들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굶고 있으니 도와 달라는 애절한 사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육영수 여사는 이런 편지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았었고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 주셨다. 그 편지를 받은 바로 그날 저녁 나는 영부인의 지시로 쌀 한 가마와 얼마간의 돈을 들고 그 집을 찾아 나 섰다. 성남은 지금은 모든 게 몰라보게 달라진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철거민들이 정착해가는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도로는 물론 번짓수도 정리가 안 되어서 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아갔을 때는 마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상을 받아 놓고 있는 중이었다. < 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