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對 진보
보수·진보 성향은 '미각'과 같은 것… 유전·교육·체험따라 다르게 자리잡아
지키려는 보수, 고치려는 진보… 저마다 '義'를 자신
집단적 위선 버려야 진짜 대화 시작된다
자너선 헤이트(Jonathan Haidt)|Pantheon Books|419쪽|28.95달러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피하라." 식탁 예절 수칙 1호다. 왜 그토록 중요한 문제가 정작 갈등의 불쏘시개로 의심받게 됐을까. 정치·도덕·종교의 양축인 보수(Conservative)와 진보(Liberal)는 왜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걸까. 어느 사회나 골머리를 앓는 좌우 대립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는 버지니아대 심리학 교수. 뇌과학과 유전학, 사회심리학, 진화모델의 첨단 연구와 방대한 실험 결과를 끌어왔다. 지난달 영미권에서 출간된 후 좌우 언론·지식인 모두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의 자기 이해에 기념비적인 공헌'(뉴욕타임스북리뷰), '정치·종교·인간 본성에 관한 우리의 사고와 대화 방식을 바꿀 만한 책'(미 공영라디오 NPR 북스)….
◇도덕성은 사회 접착제
저자는 갈등의 뿌리부터 헤쳐 보인다. 왜 사람들은 매사에 옳고 그름을 따지나. 왜 자신(자기 집단)은 옳고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상대는 비이성적이고 구제불능이라 여길까. 의로움에 대한 자기확신은 진화 과정에서 길러진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담론은 자기(집단) 행동을 상대에게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발달시켜온 일종의 사회적 설득술. 그 덕에 인류는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쌓을 수 있었다. 의협심은 본능적 혈연주의를 극복하고 더 큰 협력집단(공동체, 국가 등)을 만드는 접착제였다. 하지만 의로운 마음은 집단 내 꺼지지 않는 분쟁의 불씨이기도 하다.
◇보수-진보의 갈림길
보수와 진보는 왜 생길까. 저자는 도덕(정치)적 취향도 식성이나 입맛 같은 것이라 말한다. 미각처럼 유전 요인과 성장 과정의 교육·체험에 의해 발달된다. 보수-진보를 가르는 유전 특성은 크게 두 가지. 위협에 대한 민감성과 새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호주인 1만3000명의 DNA를 분석했더니 보수 성향 사람은 세균감염 위협이나 갑작스러운 소음 같은 위험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진보는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모험성이 높았다. 이런 기본 성향은 나이가 들면서도 이어진다.
보수와 진보 그룹은 이 이야기부터 서로 다르다. 진보의 스토리 구도는 영웅적인 해방 이야기다. 그 속에서 권위와 권력, 위계, 전통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열망을 해방시키기 위해 부서져야만 하는 족쇄다. 반면 보수의 스토리는 방어적 영웅주의다. 그림으로 치면 진보는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서 죄수들을 해방시키는 군중의 모습, 보수는 흰개미떼 공격으로부터 집을 지키고 고치는 가족에 가깝다.
◇결론부터, 이유는 다음에
서로 간의 대화는 왜 어려운가. 도덕적 판단에는 직관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사후 정당화에 개입할 뿐이다. 도덕적 질문을 던진 후 사람들의 뇌를 보면, 결론은 순식간이고 그다음에 이유를 생각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니 '왜 저쪽은 이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걸까' 탄식해 봐야 소용없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면 이성의 주인인 도덕적 직관에 호소해야 한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쟁점에 직면하면 저마다 '우리는 얼마나 옳은지, 저들은 얼마나 틀려먹었는지' 사후 논리를 세우고 끼리끼리 공유하느라 바쁘다. 상대 쪽도 뭔가 중요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 선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은 눈에 안 들어온다. '의로운 마음'은 한데 묶기도(bind) 하지만 눈멀게도(blind) 한다.
◇진보는 '도덕적 편식자'
저자는 인간의 도덕 감성을 6가지 미감을 가진 혀에 비유한다. 지구상의 모든 도덕률은 6가지 요소로 분류된다. 배려/위해(危害), 공정/속임수, 자유/억압, 충성/배반, 권위/전복, 신성함/타락이다. 보수는 6가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에 비해 진보는 배려와 공정에 특히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입맛으로 치면 편식자다.
진보는 상대편의 도덕적 입장에 대한 이해력에서도 보수보다 떨어진다. 저자는 직접 평가 웹사이트(Yourmorals. org)를 만들어 실험했다. 도덕적 질문을 주고 본인의 정치성향·대답과 함께 반대성향 사람의 답도 예상하게 했다. 온건파나 보수파의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반면 진보적일수록 정확도가 낮았다. 오답률이 가장 높은 경우는 진보파가 배려와 공정 문항에 대한 보수파의 답을 예상했을 때였다. '정의는 한 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라는 명제를 보고 진보파는 '보수파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보수파의 동의율은 높았다.
저자는 보수가 진보에 비해 도덕적 취향의 폭도 넓고 포용력도 낫다고 말한다. 그 결과 도덕적 메시지를 통한 유권자 끌기에서도 보수가 진보보다 유리하다는 것. 이쯤 되면 저자의 당파성에 의심이 갈만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진보주의자이며 자기 진영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를 건넬 뿐이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도 "나 같은 진보주의자에게 우파에 대한 환상을 깨도록 도와주는 매력적인 신간"이라고 했다.
저자는 마태복음 7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의 '의로운 마음'이 자기만 옳다고 믿는 위선자를 낳을 수 있다고 자각할 때만 대화는 가능할 거란 결론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미국 대신 한국이란 단어를 바꿔 넣고 읽어도 별로 어색하지가 않다.